KBS교향악단 현충일 기념연주회
공연명 | KBS교향악단 현충일 기념연주회 |
공연일 | 2004년 06월 04일(금) |
공연시간 | 오후 07시 30분 |
공연장소 | KBS홀 |
출연 | 지휘 l 정치용 출연 l 소프라노 김영미, 바리톤 김동섭 협연 l 국립합창단 |
프로그램
PROGRAM
말러 /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Kindertotenlider)(26)
INTERMISSION
포레 / 레퀴엠 (39)
KBS교향악단은 제49회 현충일을 맞아 오는 6월4일(금)오후7시30분
KBS홀에서 현충일기념특별연주회 레퀴엠을 무대에 올립니다. KBS교향악단이 처음 시도하는 말러의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와 천상의 소리와 같은 포레의 레퀴엠을 연주합니다. 오직 조국을 수호하겠다는 애국충정의 일념으로 몸과 마음을 받치고 가신 님들의 넋을 위로하고,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KBS교향악단의 최고의 역량을 발휘할 것입니다.
정치용 지휘와 소프라노 김영미, 바리톤 김동섭이 국립합창단과 함께 앞서 가신 선각자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할 것입니다. 말러와 포레의 작품을 사랑하시는 음악애호가들의 입장에서는 쉽게 한국무대에서 볼 수 없었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뜻깊은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곡목해설
레퀴엠이란?
레퀴엠이란 위령미사 때 사용하는 음악으로 정식명칭은《죽은이를 위한 미사곡》이다 그러나 노랫말의 첫마디를 ?requiem(안식을…)?으로 시작하는 이유로 이와같이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진혼곡, 또는 진혼미사곡 이라고도 하는데. 옛날에는 가톨릭교회에서 그레고리오성가로 불렸다. 이후 15세기부터 다성부로 된 레퀴엠도 나타났으며 1600년 이후는 독창 ?합창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작품도 만들어졌다. 하지만 점차 연주회용의 성격이 짙어지면서 모차르트, 케르비니, 베를리오즈, 베르디, 포레 등이 작품을 발표했다. 이 밖에 루터교회나 성공회의 전례를 위한 것, 그리스교회의 전례에서 죽은 이를 위한 레퀴엠도 있다. 그러나 브람스의 《독일레퀴엠》, 힌데미트의 《레퀴엠》, 브리튼의 《전쟁레퀴엠》 등은 교회의 전례와는 관계없는 연주회용이다.
말러/ 죽은 아이를 그리는 노래에 관하여
말러는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시를 바탕으로 이 음악을 썼다. 그렇다면 이 음악의 배경이 되는 뤼케르트 시의 배경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뤼케르트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었는데, 1833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12월 26일 막내딸 루이제가 성홍열에 걸렸다. 그리고 닷새 뒤인 12월 31일에 죽었는데, 이번에는 다섯 살이던 에른스트 역시 이 병에 걸려 1월 16일에 죽었다. 말러가 2류시인에 불과했던 뤼케르트의 시에 공감을 느꼈던 이유는 뤼케르트가 잃은 아이들 중에 에른스트가 바로 1874년에 죽은 말러가 가장 사랑했던 동생의 이름과 같았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아버지 프리드리히 뤼케르트는 남매를 한꺼번에 잃은 슬픔과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였고 죽을 때까지 그 아이들의 초상화를 껴안고 살았다. 1834년부터 이런 자신의 슬픔을 매일 시를 써서 죽은 아이들을 추모했는데, 그것이 모여 443편의시가 되었다. 1872년 프리드리히 뤼케르트의 아들인 하인리히는 이 가운데 425편의 시를 네 부분으로 편집하고 출판하였다.
① 노래와 아픔(Lied und Leid)- 25편
② 병과 죽음 (Krankheit und Tod)- 168편
③ 겨울과 봄 (Winter und Fr hling)- 66편
④ 위안과 고양 (Trost und Erhebung) – 166편
말러는 이들 가운데 제2편의 56번째의 시의 1. ‘문으로 들어올 때(Wenn zue Thur)’, 2. ‘너의 엄마가(Wenn dein Mutterlein)’, 69번째의 시 ‘이제는 다 알겠네(Nun seh’ich wohl)’, 그리고 제4편의 47번째 시 ‘자주 생각한다(Oft denk’ich)’, 83번째 시 ‘이 같은 날씨에(Lu diesem Wetter)’, 115번째 시 ‘태양은 곧 떠오르고(Nun will Die Sonne)’등 다섯 편을 골라서 작곡했다. 말러는 이렇게 다섯 편의 시를 골라 시인의 아픔과 희한에 공감한 감동적인 가곡을 작곡하였다. 죽음이 상징하는 암흑을 구원을 상징하는 빛에 대비시켰다 다라서 그는 태양 촛불 별 등 빛을 표현하는 시구가 들어 있는 시만을 선택하고 있다 말러는 이 연가곡을 완성하고 3년 후에 그의 사랑하는 딸 마리아를 잃고 애통해하는 운명을 맞이한다.
말러는 이 가곡집을 바리톤 독창으로 연주되기를 바랐는데 그것은 바리톤이 아버지의 절제된 고통받는 심정을 나타내는데 적절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의 생전에도 콘트랄토나 소프라노가 노래하기도 했다. 말러는 이 가곡집 첫 머리에 “이 다섯 곡은 나눠질 수 없는 완전한 연가곡임으로 중단 없이 계속해서 연주되어야 한다.”라는 주의를 써놓았다.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는 오케스트라 반주를 갖는 진정한 뜻의 첫 오케스트라 연가곡이라고 하겠는데 그것은 이 곡이 처음부터 음성과 오케스트라를 위해 작곡된 첫 곡이기 때문이다. 『방황하는 젊은이의 노래』가 처음부터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고 작곡되었다고 하나 처음에는 피아노와 노래로 작곡되었고 오케스트레이션도 바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상기할 때, 또 『어린이의 요술 뿔피리 가곡집』이 연가곡이 아닌 모음곡집인 것을 감안할 때 그렇게 볼 수 있다.
포레 / 레퀴엠에 대하여
많은 프랑스 음악가들처럼 가브리엘 포레 역시 오랜 시간 성당의 오르가니스트로 일했다. 어려서부터 종교학교에서 교육을 받았고 카톨릭교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던 탓도 있지만, 그의 레퀴엠은 모든 면에서 포레를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하다.
프랑스 음악이 체질적으로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하는 독일인들에게조차 ‘가장 친근한 프랑스 음악이라고 하면 포레의 레퀴엠을 꼽을 정도다. 이처럼 포레의 레퀴엠이 일반대중들에게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은 포레 자신도 언급한 것처럼 이 곡은 ‘고통스런 죽음이 아니라, 다음 생의 행복에 대한 갈구를 표현한 것’이었기 때문은 아닐까한다. 다시 말해서 죽음이 슬픔이거나 고통이라기 보다는 영원한 안식으로 인식하려는 포레의 생사관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사실 이 곡은 1885년,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이 곡을 작곡한 것으로 마치 천상의 천사들이 죽은 자의 영혼을 달래듯 너무나도 아름다운 선율로 프랑스음악사는 물론 세계 음악사 가운데 레퀴엠 역사의 금자탑으로 남아있다. 이 곡은 원래 실내악으로 편성되어 1888년 메들렌 교회에서 연주되었지만 이후 관현악 편성으로 재구성되었고 1900년 이후엔 이 편곡이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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